[책] 로지컬 씽킹 - LLM 시대에 다시 보는 맥킨지식 사고법

아는 사람은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구판이다. 옛날 맥킨지식 사고법이 유행했던 시절에 샀기 때문이다. 아마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놓고 읽지는 않았다. 왜 안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맥킨지식 사고법이 워낙 유행하던 시절이라 논술 관련 교재나 다른 책에서 많이 차용하고 있었고, 그런 것들을 통해 이미 어떤 내용인지 대충 알고 있어서였을 것 같다. 그럴 거면 왜 샀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책통법 이전에는 책을 살 때 그렇게 생각하고 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유행이 꽤 많이 바뀌었다. 맥킨지식 사고법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문제에 대한 최적해를 찾으려는 시도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가지고 있는 정보도 적고, 최적해를 찾을 시간도 돈도 없다. 그래서 이런 접근보다는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고치는 방식이 실용적으로 여겨졌다. 린 스타트업, 애자일, 디자인 씽킹 같은 방법론들이 이런 접근법이었다.

나도 대체로 이 방법을 좋아한다. 커리어 대부분을 스타트업에서 보냈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그 방식이 맞았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작게 만들고 현실에서 부딪혀보는 편이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실행하지 않은 분석은 틀리기 쉽고, 사용자와 시장과 현장은 머릿속 논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둔 로지컬 씽킹은 딱히 다시 꺼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책장 안 어딘가에서 썩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LLM을 쓰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 다시 그런 사고법이 필요해졌다고 느낀다.

LLM에는 논리가 없다.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 뿐이다.

LLM은 확률적 생성기다. 앞뒤로 어떤 것을 붙여도 이 본질은 벗어날 수 없다. 그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고, 논리적인 글처럼 보이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첫째", "둘째", "따라서" 같은 접속어와 bullet point, 숫자 리스트 같은 형식을 사용해 사고의 모양을 흉내 낸다. 하지만 그 안의 전제가 정말 맞는지, 결론에 근거가 있는지, 중요한 쟁점이 빠지지 않았는지, 애초에 풀고 있는 문제가 맞는 문제인지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LLM과 함께 일하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뭔가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별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산출물은 계속 쌓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중요한 판단은 미뤄져 있고, 질문은 제자리에서 돌고 있다.

애자일은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건 애자일이 아니다. LLM의 작업은 애자일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자리걸음이다. 빠른 실행과 빠른 수정은 좋은 방식이다. 다만 그 방식이 작동하려면 최소한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 방향이 결정돼 있어야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고, 틀렸을 때 빠르게 수정할 수 있다. 무엇을 검증하는지, 왜 이 실험을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판단을 바꿀 것인지가 있어야 한다. 방향 없는 반복은 학습이 아니라 그냥 꿈틀거림일 뿐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 맥킨지식 사고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다 나온 것은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이야기였다. 나도 처음에는 '흠 그렇구나. 이 사람은 맥킨지식 사고법을 좋아하는구나.' 이외의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이게 지금 내게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킨지식 사고법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빨리 내는 방법론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막연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여 지금 다뤄야 할 질문을 고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가설을 세운 뒤,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근거를 가능한 한 빈틈없이 탐색한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이 조금 느리고 답답해 보였다. 현실은 늘 모호하고, 스타트업의 일은 대부분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단 움직여야 했다. 오래 생각해서 완성도 높은 답을 찾는 것보다 작게 만들고 빠르게 고치는 편이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책은 오래도록 책장에 꽂힌 채로 있었다.

그런데 LLM을 쓰다 보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산출물을 만드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산출물이 나온다. 초안도, 요약도, 대안도, 실행 계획도 금방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 산출물이 정말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향 하고 있는지, 그 안의 논리가 제대로 서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래된 방법이 다시 필요해졌다. LLM이 답처럼 보이는 것을 빠르게 만들어낼수록, 그 전에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나온 답이 제대로 된 답인지 판단하는 힘이 더 중요해진다. 한동안 낡고 느려 보였던 방법이, 이상하게도 지금은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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