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악한 디자인

사악한 디자인 - 크리스 노더
사악한 디자인 - 크리스 노더

사악한 디자인크리스 노더가 쓴 Evil by Design: Interaction Design to Lead Us into Temptation의 번역서다. 이 책은 사용자의 심리를 이용해 행동을 유도하는 여러 기법을 다룬다. 소재는 흥미롭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은 점은 있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소개하는 기법들이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사회적 검증, 손실 회피, 희소성, 보상처럼 사용자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을 폭넓게 다루고, 이를 실제 서비스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보여준다. 다만 유용한 내용을 다룬다고 해서 읽기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문제는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디자인은 그런 심리를 이용해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교만, 나태, 식탐, 분노, 시기, 색욕, 탐욕이라는 기독교의 7대 죄악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제목과 목차만 보면 꽤 매력적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 분류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이건 설명을 위한 틀이 아니라 마케팅 훅이다.

예를 들어 탐욕은 누구나 알고 있는 대로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는 욕구다. 하지만 식탐이나 색욕은 디자인에 적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식탐을 자제력의 부족으로 설명하고, 색욕은 성적인 욕망을 넘어 대상이 무엇이든 강렬한 욕구를 품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각 범주의 의미가 겹치도록 정의했기 때문에 욕심에 의한 행동이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기 때문인지, 자제력을 잃었기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어떻게 구분 할지 애매해진다. 저자도 색욕을 출발점으로, 시기와 탐욕을 그 결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것들을 같은 수준의 범주로 나누는 방식이 적절한지부터 묻게 된다. 물론 대중서의 목차가 학문적으로 엄밀한 분류 체계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류를 했다면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7대 죄악이라는 틀은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 수고를 줄여주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저자의 서술 태도다. 사용자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디자인이 사악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원리라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사용자에게 어떤 선택지를 주는지, 그 결과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 저자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서 사악함에는 의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책에서 다룬 원칙을 선악 양쪽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개별 기법에 대한 설명을 읽는 동안에는 그 구분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태를 다루는 장에는 선택의 수를 줄이고 기본 설정을 잘 정해 사용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조언이 나온다. 동시에 의무적으로 알려야 할 내용을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두거나, 수신 거부 옵션을 찾기 어렵게 만들라는 조언도 나온다. 분노를 다루는 장에서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차분하고 공손하게 사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유머로 덮지 말라고 한다. 이것까지 사악한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읽어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악한 설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서술상의 장치라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읽다 보면 지금 하는 말이 기만적인 관행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실무에서 따라 하라는 권고인지 계속 판단해야 한다. 무엇이 효과적인지와 무엇이 정당한지를 구별하는 일은 중요한데, 책의 태도는 오히려 그 구분을 흐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사용자와 기업이 함께 이익을 얻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본문의 사례를 설명할 때도 더 일관되게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선하게도 쓸 수 있는 원칙이라고 정리해도, 서로 다른 성격의 조언을 한데 묶어 읽으며 느낀 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

마지막 문제는 문장이다. 내게는 이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구성과 서술 방식에 대한 불만만 있었다면, 그래도 참고할 내용은 있으니 관심 있는 부분을 골라 읽어보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읽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문장이 많다. 뜻을 바로 파악하기 어려워 같은 문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소리다.

예를 들면 색욕 챕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무서운 이야기가 여기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으면 좋았건만 유감스럽게도 해당 여론 조사가 아주 선견지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p. 212)

이 문장은 이중 부정 때문에 뜻을 한 번 더 풀어 읽어야 한다. 이런 문장은 번역 과정에서 원문의 구조를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문을 찾아봤다. 원문은 다음과 같았다.

That should be the happy end to a scary story, but unfortunately the survey's insinuations were marginally prescient.

놀랍게도 원문에는 이중 부정이 없었다. 설문이 암시한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말을 번역하면서 오히려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문장은 원문의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장들도 많다. 예를 들면 나태 챕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그렇게 해서 쓴 꼼수는 사용자의 시선이 향하기 쉬운 곳에 이해와 주의를 분산시키는 디자인을 결합함으로써 방문자가 자사가 선호하는 경로를 따르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p. 63)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여러 설명이 끼어 있고, 무엇을 어디에 결합했다는 것인지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대체 어떤 원문을 옮기면 이런 문장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The trick it used was to combine an understanding of where users' eyes naturally fall, and distracting designs that pull attention and create a desire to follow its preferred path.

원문도 잘 쓴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번역은 수식 관계를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 원문에서 결합하는 것은 '사용자의 시선이 향하기 쉬운 곳에 대한 이해'와 '주의를 끌고 회사가 원하는 경로를 따르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이해'가 무엇에 연결되는지 불분명해져, '이해와 주의를 분산시키는 디자인'으로 읽힐 여지가 생겼다. 독자가 문장 구조를 잘못 파악하면 의미까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원문의 수식 관계를 살리면 다음과 같이 옮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용자의 시선이 향하기 쉬운 곳에 대한 이해를, 주의를 분산시켜 방문자가 회사가 원하는 경로를 따르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과 결합하는 꼼수를 썼다.

분노 챕터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손실 회피는 잠재적 손실을 과대평가하고 잠재적 소득은 과소 평가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p. 135)

개념을 설명하면서 굳이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돌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is not different from"을 직역했나 싶어 원문을 찾아봤지만, 원문은 완전 다른 문장이었다.

Loss aversion leads people to over-estimate the potential losses from a change and under-estimate the potential gains.

원문은 손실 회피를 특정 행위와 동일시하는 대신, 손실 회피가 사람들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문맥상으로도 변화에 보수적인 사람들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번역했어야 한다.

손실 회피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로 인한 손실은 과대평가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과소평가한다.

이 예시들에서 번역이 문장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의미를 바꾸었다. 이런 문장이 최소 한 페이지에 하나씩은 있다. 독자가 원문을 찾아 대조해야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번역서를 읽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심리적 기법들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책을 하나로 묶는 7대 죄악이라는 틀이나 사악한 설계자라는 화법은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문장을 읽는 피로까지 더해졌다. 얻을 내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얻기 위해 들인 수고가 너무 컸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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