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술을 하면서 배운 101가지

마술을 하면서 배운 101가지 - 최현우
마술을 하면서 배운 101가지 - 최현우

최근 즐기고 있는 취미가 하나 있다. 마술을 보면서 어떻게 한건지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취미를 시작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퍼즐 문제 풀듯이, 혹은 추리 소설 읽듯이 접근했다. 기술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 보니 마술 관련 책을 한 권 두 권 사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마술 서적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별로 없다. 결국 원서를 사야 했고, 직구로 사기에는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결국 최근 하는 취미 생활 중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취미가 됐다.

그렇게 마술을 공부한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이제는 호기심이 아니라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당연히 아직 어떻게 했는지 감도 안 잡히는 마술도 많다. 그리고 추측컨대 내가 아는 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들이라 현대 프로 마술사들의 액트에 사용된 기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원리는 안다. 문제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다.

기술을 알면 알수록 기술을 자연스럽게 섞거나 자연스럽게 만드는 연출, 다음 마술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빌드업, 마술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보여줄 수 있는 화면 연출들이 더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관심의 중심이 완전히 이동했다. 왜 여기서 이 기술을 썼을까, 왜 굳이 더 쉬운 방법을 두고 이 복잡한 루트를 택했을까, 왜 이 마술은 관객에게 기억되는 방식까지 설계돼 있을까. 기술을 많이 알수록, 기술 바깥의 영역이 훨씬 넓고 깊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이번에 읽은 '마술을 하면서 배운 101가지'라는 책은 우리나라 마술계의 대부인 최현우 마술사가 쓴 에세이다. 에세이 류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옛날이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이다. 사실 작년 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최현우 마술사가 쓴 다른 책들은 읽어봤지만 이 책은 이제서야 읽게 됐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우연히 최현우 마술사가 옛날 방송에 나왔던 것을 유튜브에서 보고 감동 받은 상태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다 이름을 보게 돼서였다. 다시 말해서 그냥 충동구매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목차에서 창을 닫아버렸을 정도로 내 취향의 책은 아니다.

놀랍게도, 아니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 고민도 안 한 사람이 돈 받고 마술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최현우 마술사가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토록 당연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붙들고 고민해 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개발자로서 살아간지 고작 10년 조금 넘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면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했고, 어디서 갈렸으며, 그 시절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흔적이 읽혔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흉내 내기 어려운 태도였다. 기본을 기본으로 남겨두지 않고, 평생에 걸쳐 다시 검증해 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게임] 단간론파 - 희망의 학원과 절망의 고교생

포인투 크롬북 14 터치 LT0301-01KR

노트북 하판에 구멍내기

Majestouch 스위치 교체

[책] 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