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 그레고리 하틀리, 메리앤 커린치

미 육군에서 심문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하틀리가 지은 바디 랭기지를 읽는 노하우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면 편견 없이 관찰하지만 관찰한 결과를 그 사람의 문화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즉, 사람의 생각을 책처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책은 쉬운 그림 동화가 아니라 사전 지식이 필요한 외국어로 쓰인 전문 서적이다.

여기에서 이 책의 큰 문제가 있다. 아무리 한국의 생활이 서구적으로 됐다고 해도 한국인이 미국인이 아닌 이상 둘의 문화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디 랭기지는 행위자의 사고방식이 어떤 문화에 기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저자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알려주려고 노력하지만, 어찌 됐든 그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 문화를 기반으로 서술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온 서술 중에서 어떤 행동이 한국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큰 그림을 제외하면 세세한 기술들은 한국인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유익한가와 별개로 책 자체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추측이긴 하지만, 나는 이 건 전적으로 메리앤 커린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3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그중 대부분이 공동 저자다. 그리고 그 책들에 그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책의 내용을 보면 그녀가 없이 공동 저자가 혼자 책을 썼다고 해도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의 경우에도 미 정보국 출신 그레고리 하틀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책을 구성하기 때문에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린 메리앤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author와 writer가 구분된 것이다. author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책을 쓰지만, 책을 완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writer다. author가 제시한 지식과 경험을 writer가 다시 구성해 글로 바꾼다. 대필작가로 번역되는 ghostwriter는 writer의 존재를 숨기기 때문에 이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해외에서도 흔한 경우가 아니고 우리나라에 비슷한 시스템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언뜻 생각하면 대필작가와 무엇이 다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독자가 책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된다는 점이 다르다. 책에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도 중요하다. 분명히 내용은 알찬데 글이 지저분해 보기 싫은 책도 있고, 내용은 별거 없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기 싫은 책도 있다. 글의 힘이고, 이런 것을 만드는 건 작가다. 그런데 대필작가의 경우 작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원하는 작가를 선택할 수 없다. 반면에 저자와 작가를 구분해주는 것은 책의 마음에 든 것이 내용 때문인지 글 때문인지에 따라 저자와 작가 어느 쪽을 거를지 결정할 수 있다.

어찌 됐든 이런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면 좋겠다. 아쉽게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면 본업에 너무 충실해 글을 쓸 의욕이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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