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쿄 기담집

도쿄 기담집 - 무라카미 하루키

귀신 이야기의 기담이 아닌 "아, 그런 일도 있었나요? 참 신기하네요"라는 느낌의 기담이다.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의 총 5편의 소설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저 이야기 5개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이 소설들은 기담이다.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기담이니까. 현실적이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도쿄 기담집의 소설들은 현실적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분명한데 생생하게 살아서 다가온다.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이야기를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돼있다.

첫 소설인 "우연한 여행자"는 저자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놀라운 일을 겪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자신의 직업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그리고 작가의 지인이 겪었다는 평범하지 않지만 있을법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하루키가 소설가인 이상 모든 것은 소설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소설에서 독자를 기이한 세계로 떠민다. 절벽에서 죽일듯한 기세로 순식간에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출근길에 인파에 밀려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밀어낸다.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에 도착할 때쯤이면 너무 밀려났나 싶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돌이 어떻게 움직이나. 도쿄 기담집에 담긴 단편 중 가장 비현실적인 제목이다. 사실 도쿄 기담집에 실린 그 어떤 소설보다도 현실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있을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만난 "시나가와 원숭이"는 괴이의 세계로 가는 롤러코스터다. 잔잔하게 흘러갈 것 같았던 이야기는 원숭이와 함께 현실에서 괴이의 세계로 수직 낙하한다.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구성 때문만은 아니다. 필력이 없으면 단순히 구성만으로는 이런 생생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루키 특유의 흡입력 있는 문장들은 바로 다음 문장들을 궁금하게 한다. 결말이 궁금한 소설은 많지만 바로 다음에 올 문장이 궁금하게 하는 소설가는 많지 않다.

이런 자잘한 평들을 다 떠나서 일단 재밌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그것이 원초적인 재미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하루키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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